개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에 있는 도시.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도시국가로 유명하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스파르타가 아니라 스파르테(Σπάρτη)이나 이는 아티카식이며, 도리아식으론 스파르타(Σπάρτα)이므로 딱히 틀린 명칭은 아니다. 참고로 오늘날에는 '스파르티'라고 읽는데 Η/η 모음 읽는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는 건국왕 라케다이몬의 아내인 스파르타의 이름을 딴 것이며, 당시 폴리스의 공식 명칭은 라케다이몬(Λακεδαίμον = 라케대몬), 혹은 라케다이모니아(Λακεδαιμονία=라케대모니아)였다.[1] 때문에 스파르타 전사들의 방패에는 '라케다이몬'의 첫 글자인 대문자 '람다(Λ)'가 그려져 있었고 라케다이몬과 스파르타라는 이름은 서로 통용되었다. 고대 스파르타 특유의 군인 양성방법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여, 현대에도 혹독하고 자비심 없는 비인간적인 단련 과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하곤 한다. '스파르타식'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 그러나 스파르타식 교육 말고도, 시민의 정치참여와 안정성을 적절하게 타협시킨 혼합정 시스템으로도 유명하다.
역사
성립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직후, 고대 그리스의 암흑시대에 스파르타 지역에는 정착촌 4곳이 있었다. 그중 2곳이 동맹을 맺어 다른 2곳을 멸망시킨 것이 스파르타의 기원[2]으로, 스파르타 특유의 이중왕(Dual King) 제도도 여기에서 기인했다고 여긴다. 스파르타는 미케네 문명이 파멸할 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도시이다. 아테네와도 비슷한데, 스파르타는 특히 미케네 문명 시대의 전통이 잘 보존되었다. 스파르타 특유의 집단 전사 문화나 자유로운 여성 문화는, 미케네 문명 시대의 그리스 전사 문화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던 스파르타는 이웃 폴리스 메세니아와 라코니아를 정복하고 시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이렇게 세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극심하게 벌어지고 제2계층과 제3계층들이 대규모로 반란을 일으키는 등 사회혼란이 일어났다. 이 혼란을 극복하고자 독특한 사회체계로 알려진 리쿠르고스 체계가 성립됐다고 전한다. 이때 스파르타는 독특한 삼권분립 제도를 만들고 사치를 금지하며, 공동식사 제도를 확립하고 교육제도를 정비했다. 흔히 알려진 스파르타식 교육제도도 이 시기에 정립된 듯하다. 당대 기준으로 봐도 뜨악한 교육제도를 갖추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를 바탕으로 군사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사 육성 특화식 교육과는 다르게 페르시아 전쟁 이전까지는 대규모 확장에는 주저했는데, 후에 스파르타가 확장정책을 펴다가 쇠락의 길을 걸었음을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쨌든 그리스 육군 최강국으로 인정받았고, 그 결과 페르시아 전쟁 시 결성한 델로스 동맹에서 수장이 되었다. 사실, 병력 동원 비율이나 그 구성원들의 외교관계를 생각하면, 이때 그리스는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주력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스 편에 든 나머지 도시국가들도 대부분이 스파르타를 맹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소속국들이었다. 페르시아가 반드시 멸망시키려고 했던 도시가 스파르타와 아테네란 점에서는 당연히 생존을 위해 모든 걸 걸어야 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테베는 페르시아와 함께 연합전선을 꾸리기도 했다.